2002년 여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4강 신화를 만들어냈어요. 아시아 국가가 월드컵 4강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에요.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했던 한국이 어떻게 세계 축구 강호들을 연달아 꺾을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하나씩 살펴볼게요.
한일 공동개최라는 특별한 배경
2002 월드컵은 FIFA 역사상 최초로 두 나라가 공동 개최한 대회였어요. 원래 일본이 단독 개최를 추진했지만 아시아축구연맹의 중재로 한국과 일본이 함께 대회를 여는 것으로 결정됐어요. 개막전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고, 결승전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치러졌어요.
한국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전주, 울산, 서귀포, 수원 10개 도시에 새 경기장을 짓거나 리모델링했어요. 이 경기장들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K리그 구단들의 홈구장으로 계속 쓰이고 있어요. 개최국 지위 덕분에 한국은 예선 없이 자동으로 본선行 티켓을 받았고, 이 점이 오히려 대표팀에게는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평가전을 많이 치를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거스 히딩크 감독의 파격적인 실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에 그친 뒤, 대한축구협회는 2000년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어요. 히딩크는 부임 초기 평가전에서 잇달아 패하며 ‘오대영 감독’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었지만, 학연과 지연을 배제한 철저한 실력 위주 선발 원칙을 밀어붙였어요.
히딩크는 선수들의 체력 훈련에 특히 공을 들였어요. 후반 막판까지 뛸 수 있는 강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고강도 피지컬 트레이닝을 반복했고, 실제로 이탈리아전과 스페인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상대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또한 그는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설기현처럼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들을 과감히 발탁해 주전으로 기용했어요.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이어진 여정
한국은 D조에서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함께 편성됐어요.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본선 첫 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고, 이어 미국과 1대1로 비긴 뒤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어요.
16강에서는 우승 후보로 꼽히던 이탈리아를 상대로 연장전 끝에 안정환의 골든골로 2대1 역전승을 거뒀고, 8강에서는 스페인과 0대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5대3으로 이겨 사상 첫 4강 진출을 확정지었어요. 준결승에서는 독일에 0대1로 아쉽게 패했고, 3‧4위전에서 터키에 2대3으로 져 최종 4위로 대회를 마쳤어요.
거리를 가득 채운 붉은악마 응원
대회 기간 내내 전국 곳곳의 광장과 거리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로 가득 찼어요.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경기마다 수십만 명이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고, 이 거리 응원 문화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어요.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 박수 구호는 이 대회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자리잡았어요.
붉은악마는 원래 1995년 결성된 축구 서포터스 단체였지만, 2002년을 거치며 국민적 응원 문화의 대명사가 됐어요. 이 열기는 이후 국가대표 경기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비슷한 거리 응원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가 됐어요.
대회가 한국 축구에 남긴 유산
4강 신화 이후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여러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어요. 특히 박지성은 이 대회를 계기로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고,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진출하며 한국 축구의 해외 진출 붐을 이끌었어요.
또한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 축구 유소년 시스템과 K리그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됐고,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한 단계 올라갔어요. 지금도 2002년 4강 신화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어요.
2002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국민 통합과 자긍심을 끌어올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 선수들의 투혼, 그리고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들의 응원이 어우러져 만든 이 신화는 여전히 한국 축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어요.